(충북뉴스 구본상의 우리말 허심탄회) 여름을 보내며 우리네 여름의 내용을 곰곰 반추한다면 “무더위”와 “호우”가 아닐까?
불볕더위라는 말도 많이 하지만, ‘햇볕이 몹시 뜨겁게 내리쬘 때의 더위’인 불볕더위보다 ‘습도와 온도가 매우 높아 찌는 듯 견디기 어려운 더위’라는 무더위가 이제는 한국의 여름을 더 잘 나타내는 듯하다.
이번 여름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FC바르셀로나가 한국을 찾았을 때 "한국이 이렇게 덥고 습한지 몰랐다. 평소보다 땀이 많이 나 경기하기 힘들었다"고 밝힌 선수나 “더위에 숨이 막힌다”던 스페인 취재진의 말이 우리의 여름이 어떤 더위인지 정확히 방증한다.
지중해의 나라, 스페인의 여름도 시에스타(낮잠)가 있을 정도인데 그들조차 이런 말을 했다고 해서 놀랐다. 그만큼 이제 우리의 여름은 쉽지 않다.
여름낮, 여름밤이 그러했다면 우리의 여름비는 어떤가.
요즘은 ‘여름철에 여러 날을 계속해서 비가 내리는’ 장마보다 ‘어느 한 지역에 집중적으로 내리는’ 집중호우가 더 무섭다. ‘갑자기 세차게 쏟아지는 비’인 폭우(暴雨)나 ‘줄기차게 내리는 크고 많은 비’인 호우(豪雨)가 근래 한국 여름날의 비를 잘 보여준다.
사실 호우는 야누스의 두 얼굴처럼 같은 음을 가진 전혀 상반된 다른 비의 뜻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중국 당나라 시인 두보의 <춘야희우(春夜喜雨)>의 첫 구절, '호우지시절(好雨知時節ㆍ좋은 비는 때를 알고 내린다)‘의 ’호우(好雨)‘다. ’때를 맞추어 알맞게 오는 비‘라는 뜻이다. 알맞은 때에 알맞은 분량을 맞추어 오는 비는 한자 그대로 좋을 ’호(好)‘에 비 ’우(雨)‘, 즉 좋은 비가 아니겠는가.
영화 마니아라면 허진호 감독의 멜로 영화 <호우시절>을 떠올리는 분도 있을 것이다. 영화에서는 맞춤하게 내리는 비와 같이 알맞은 때에 스며드는 사랑을 이야기한다. 좋은 사랑이란 그 나름의 때와 알맞은 부피, 질량이 있다는 것이리라.
반면, 또 다른 호우(豪雨)는 ’줄기차게 내리는 크고 많은 비‘라는 뜻이다. 비슷한 말로는 심할 심(甚)에 비 우(雨)를 써 ’아주 많이 퍼붓는 비‘인 심우(甚雨)가 있다. 이 호우(豪雨)의 ’호‘는 ’호걸 호(豪)‘ 자라 왜 여기에 쓰였는지 고개가 갸우뚱하기도 하지만, 이 ’호(豪)‘는 한편으로는 짐승인 호저를 뜻하기도 한다.
한자로 ’호(豪)‘가 높을 고(高) 아래 돼지 시(豕)가 있는 형태라, 지금 시대 호저 과의 호저라는 동물과 달리 고대의 호저는 이른바 야생 멧돼지이고 그래서 크고 높고 난폭하다의 의미로도 파생된다는 설도 있다. 그런 맥락에서는 무섭게 달려드는 야생 멧돼지와 같이 퍼붓는 비, 그야말로 세차게 내리쏟는 호우(豪雨)가 딱 맞는 말인 셈이다.
그런데 한국의 여름비는 알맞은 때와 양을 가려오는 호우(好雨)가 아니라, 안타깝게도 야누스의 그 뒤 얼굴인 세차게 크고 많이 쏟아지는 호우(豪雨)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무더위와 호우 속에 여름을 지나오느라 모든 분들 수고 많으셨다. 입추도 처서도 지나 가을로 이른 이 때, 숨 막히던 무더위도, 줄기차게 쏟아지던 호우도 작별을 고할 때다.
여기서 흥미롭게 덧붙이는 부록은 ’호우‘라는 말이 충북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한자가 전혀 다른 호우(湖右)는 충청북도를 달리 이르던 말이었다.
낯설기는 하지만 충청도 전체를 아우르던 말인 호서(湖西)지방을 떠올리면 금방 이해가 된다. 오늘 우리말 허심탄회는 호우(湖右)에서 호우(豪雨)를 말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