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뉴스 구본상의 우리말 허심탄회) ‘구본상의 허심탄회’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시작한 지도 어느새 2년 4개월이 지나고 있다.

직접 지은 제목이 아니었고 요즘 방송가에서 보기 힘든 한자 제목이었지만, 공영방송으로서 맥락 없이 반지성을 자극하는 센 말의 향연을 지양하고 싶었던 프로그램 취지에 딱 맞는 이름이었다고 생각한다.

허심탄회(虛心坦懷) 보통 ‘솔직함’으로 이해되고 영어로도 frankness로 치환되는 이 말은 사실 정확한 출처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저 중국 고전 문헌에서 유래했다는 정도.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품은 생각을 터놓고 말할 만큼 아무 거리낌이 없고 솔직함’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일견 참 좋은 말이지만 실제 솔직하기란, 허심탄회하기란 쉽지 않다. 세상만사가 다 허심탄회해야 당연할 듯해도, 뉴스에 “허심탄회한 대화” 등의 문구가 종종 등장한다는 것은 그만큼 허심탄회가 어렵기 때문이다.

‘빌 허(虛)’ ‘마음 심(心)’, 우선 빈 마음이 된다는 것은 욕심과 강한 목적, 지나치게 계산된 의도를 비워낸다는 것이다. 거기에 ‘평평할 탄(坦)’ ‘품을 회(懷)’, 장애물이 없이 평평히 터놓고 상대의 생각과 말을 품을 만큼 피해의식, 자격지심으로 비뚤어진 마음이 없어야 한다.

“그래, 쉽진 않지만 욕심을 비우고, 상대를 곡해할 마음의 언덕을 치우고 이야기해 보지. 그러면 되지!” 그런데 여기에서 ‘허심탄회’의 드러나지 않은 또 다른 의미가 우리 앞에 등장한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허심(虛心)’이라는 단어의 두 번째 의미를 바로 ‘남의 말을 잘 받아들임’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아마 지금의 한국 사회는 여기에 막혀서 허심탄회가 안 되는 것이 아닐까?

“마음의 거리낌이 없이 솔직한 대화”에는 전제가 있던 것이다. 바로 “남의 말을 들을 준비”. 아무리 평평하게 가식 없이 터놓고 이야기해도, 결국 피차 남의 말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솔직함은 허심탄회가 아닌 셈이다.

지금의 시대는 솔직히 솔직하게 말하기 어려운 시대다. 말 한마디를 그 자체만 도마 위에 올려 손가락질하기도 하고, 상대가 나의 말을 자르고 토막 내서 어떤 칼로 되돌려 줄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있다.

그래서 교류하지 않고 분절되어 있는 정지된 상태의 관계를 가장 안전하다고 느끼거나, 반대로 극단의 언어를 상대에게 쏟아내고 들이미는 것으로 솔직함이 포장된다. 이럴 때 서로의 경계심을 조금씩 덜고 허심탄회의 속뜻을 되새겨보면 어떨까?

나는 남의 말을 잘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는가. 또 이러한 시대의 자화상을 조금씩 바꾸어가자고 독려하고 스스로 노력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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