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뉴스 백범준의 해우소) 전국은 지금 ‘불가마’다. 연일 이어지는 찜통더위에 얼굴과 하나 된 지 오래인 마스크는 불쾌지수를 더욱 높였다.

강화된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는 피서를 떠나려는 사람들의 발도 묶었다. 더위 앞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국이다.

국민들의 불편한 심기는 말할 필요도 없다. 이런 때에 쉽게 화를 내는 자는 소인배요, 화를 참는 자는 대인배요, 화를 다스릴 줄 아는 자는 군자(君子)라 할 수 있다.

화를 다스렸던 이야기를 전한다.

옛날 한 스님을 스승으로 모시는 검객이 있었다. 검객은 평소 스님 팔목에 있는 염주를 마음에 들어 했다. 검객은 한날 스님에게 용기를 내어 염주를 달라고 간청했다. 이에 스님은 흔쾌히 검객이 가진 것과 맞바꾸자는 제안을 한다.

“그래 좋다. 너의 화내는 성질을 내게 맡기면 이 염주를 주마.”

검객은 평소 갖고 싶던 염주를 받을 생각에 스님의 말이 끝나자마자 알겠다는 답을 했다. 신이 난 검객은 염주를 받자마자 팔목에 차고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스님은 검객의 모습을 보며 한마디를 덧붙인다.

“이제 너의 화내는 성질은 내게 맡겼으니 절대 내 허락 없이는 화를 내서는 아니 된다.”

검객은 늘 팔목에 염주를 차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주막에서 술을 먹다가 시비가 붙게 된다.

평소 불같은 성질의 검객은 화를 참지 못하고 칼을 빼어 들으려 했다. 이때 손목에 찬 염주가 스쳤다.

‘아 맞다! 이제 내 마음속의 화는 더 이상 내 것이 아니지’라는 생각과 함께 빼려던 칼을 도로 집어넣었다. 화를 다스린 것이다.

화를 무조건 참으라는 말은 아니다.

참을 인(忍)자를 파자(破字) 해보면 칼 도(刀) 아래 마음 심(心)이 된다. 칼끝이 심장을 겨누는 형상이다.

오행 중 화(火)는 오장육부 중 심장과 소장을 의미한다. 해소 없는 참음은 심장을 찌르려는 칼을 방치하는 것이 다름없다. 그러다 울화(鬱火)병으로 번질지도 모른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다.

불교에서 화를 내는 것은 쾌락이요 참는 것은 고행이라고 한다.

또 화를 다스림은 중도(中道)라 한다. 화의 원인이 외부에 있을지언정 정작 화내는 주체는 자신이다.

내 마음속의 화를 언제 꺼질지 모르는 모닥불이라 생각해보자. 스트레스라는 땔감을 불구덩이에 더 이상 넣지 않으면 언젠가는 꺼질 것이다. 평소에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현생에 화를 많이 낸 사람은 다음 생에 못생긴 얼굴로 태어난다고 한다. 전생에 화를 참 많이 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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