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주의 의학칼럼] 고령사회의 든든한 울타리, 요양병원이 흔들리고 있다

2025-12-23     이국주 원장

(충북뉴스 이국주의 의학칼럼) 누구나 언젠가는 부모의 병환으로 요양병원을 찾게 되는 순간을 맞는다. 급성기 병원 치료는 마쳤지만 곧바로 가정으로 돌아가기에는 회복이 충분하지 않은 시기, 요양병원은 단순히 ‘머무는 공간’이 아니라 의료와 돌봄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마지막 회복기 의료기관’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지금 요양병원 현장에서는 조용하지만 심각한 구조적 위기가 진행되고 있다. 이는 일부 병원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노인 의료체계의 한 축이 흔들리고 있다는 경고에 가깝다.

◆ 인건비는 오르는데 수가는 제자리

요양병원은 의사와 간호사, 간호조무사, 물리·작업치료사, 행정직원, 조리원, 간병인 등 다양한 직군이 함께 일하는 대표적인 노동집약적 의료기관이다. 하지만 정부가 정한 진료비 수가는 매년 최저임금과 물가 상승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최저임금 누적 인상률은 14.9%에 달했지만, 같은 기간 요양병원 수가 인상률은 10.8%에 그쳤다.

그 결과 병원은 인력을 줄이거나 병상을 늘리는 선택지 앞에 놓이게 된다. 이는 곧 환자 안전과 서비스 질 저하로 직결된다. 인력 부족은 충분한 케어를 어렵게 만들고 낙상이나 욕창 같은 중대한 안전사고의 발생 위험을 높인다.

◆ 의료진의 이탈과 누적되는 피로

의료진 역시 버티기 어려운 구조다. 요양병원 의료진은 상대적으로 낮은 보수와 높은 업무 강도를 감내하는 경우가 많고, 회복기·중증 환자를 다루는 특성상 육체적·정신적 피로도도 높다. 이로 인해 번아웃을 호소하며 현장을 떠나는 의료진이 적지 않다. 숙련된 인력의 이탈은 환자에게 제공되는 의료 서비스의 연속성과 전문성을 약화시킨다.

간병 인력 문제도 심각하다. 요양병원 간병인의 다수는 중국동포 출신으로, 이들 역시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다.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전체 간병인의 약 79%가 60대 이상이다. 신규 인력 유입은 거의 없는 상황에서, 현장에서는 간병인 한 명을 구하지 못해 병상이 비는 일도 반복되고 있다. 간병은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핵심 영역이지만, 숙련 인력 부족은 돌봄의 질 저하와 함께 과중한 노동, 인권 문제, 안전사고 위험까지 키우고 있다.

운영의 투명성과 감염 관리 문제도 과제로 남아 있다. 일부 요양병원에서는 진료비 청구나 환자 상태 변화에 대한 설명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아 보호자의 불신을 낳는다. 고령 환자가 밀집된 환경임에도 시설 노후화와 관리 인력 부족으로 감염 관리에 취약한 병원도 존재한다. 회복기·중증 환자 치료는 높은 전문성과 장비, 숙련된 인력이 동시에 요구되지만 현재의 수가 체계는 이를 충분히 보상하지 못하고 있다.

◆ 지속 가능성을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해결의 실마리는 분명하다. 간병비에 대한 공적 지원을 확대해 환자와 보호자의 부담을 덜고, 간병 서비스의 질을 제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요양병원 수가를 현실화하고 중증·회복기 환자 진료에 대한 가산제도를 도입해 병원의 질적 투자를 유도할 필요도 있다.

아울러 외국인 간병인력 제도화와 표준화된 교육·자격 인증 시스템 구축 등 간병 인력 수급을 위한 정책적 해법이 시급하다. 의료 질 평가와 감염관리 제도 역시 병원의 부담만 늘리는 방식이 아니라, 실질적인 지원과 보상이 병행돼야 한다. 수가 개선을 통해 확보된 재원이 인력과 복지, 시설 개선으로 재투자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또한 환자의 중증도에 따라 요양병원, 요양원, 가정 돌봄을 합리적으로 구분하고, 이에 맞는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체계 정비가 필요하다. 현재처럼 규제 중심의 정책으로는 현장의 부담만 가중될 뿐이다.

“노인은 우리의 미래”라는 말은 결코 추상적인 구호가 아니다. 앞으로의 노인 세대는 더 높은 의료 서비스와 개인 프라이버시를 요구할 것이며, 요양병원 역시 이러한 변화에 발맞춰 변화하려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사실이 하나 있다. 우리 중 누구나 언젠가는 가정 내 돌봄이 어려운 시기를 맞이할 수 있으며, 그때 요양병원은 반드시 필요한 사회적 기반 시설이라는 점이다. 중증 케어와 재활, 말기 질환을 담당하는 요양병원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더 이상 병원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체의 책임 있는 제도 개선이 뒤따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