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평군에 장학금 기탁 등 후손 역할 모범

[충북뉴스 증평=소진섭 기자] “연병호 할아버지 후손으로 지낸다는 게 무척 영광스럽고, 주위 여러분들께 늘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증평 출신 애국지사 연병호(1894∼1963년) 선생의 손자 연규은(72·사진, 증평읍) 씨는 생활이 넉넉지 않지만 2년째 (재)증평군민장학회 장학기금을 기탁했다.

연규은 씨는 연병호 선생 셋째 아들인 연성희 선생의 아들로, 1943년 5월 중국 연길시에서 태어났다.

그가 낯선 땅 중국에서 태어난 이유는 연병호 선생 부인인 곽애섭 여사가 1932년 연병호 선생의 형인 연병환 선생의 집이 중국 용정에 있어 삼형제(연중희, 연충희, 연성희)를 데리고 중국 땅에 들어갔기 때문.

부친인 연성희 선생은 중국에서 정착해 광명중학교를 졸업한 엘리트였는데, 당시 소학교 교사를 했던 양옥련 여사를 만나 결혼했다.

연성희 선생은 당시 엘리트로 인정받으며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생활형편은 그나마 괜찮은 측에 속했는데 후에 자본가라는 오해를 받아 연규은 씨는 대학도 입학하지 못하고 18년 간 농촌 생활을 하다 1980년에야 다시 도시 생활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는 도시 생활에서 그의 모교인 조선중학교 공인으로 들어가 10년간 관리직을 맡으며 직장에서 인정받아 1991년부터 1993년까지 매년 장려증서 등을 받기도 했다.

그러던 중 1992년 한·중 수교로 양국 간의 화해가 무르익으며 연규은 씨는 연병호 선생을 이을 손(孫)이 없음을 깨닫고, 중국에서 안정된 생활을 뿌리친 채 1997년 중국 장춘에서 부인, 아들, 딸과 함께 한국으로 영구 이주했다.

그의 증평 생활은 낯선 문화 적응 과정이 있기도 했지만 종중의 도움과 함께 증평출장소 시절 환경미화원으로 채용돼 2005년까지 일을 했으나 풍요로운 생활을 한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할아버지들의 조국 사랑에 누가 되지 말자! 그것이 후손된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하며 할아버지가 남긴 나라사랑과 지역사랑이 지속되기를 누구보다 열망하고 있다.

연 씨는 “내가 여기 살아서라기보다도 할아버지에 대해 주위에서 이렇게 성대하게 기념해 주고 그러니 정말 감개무량하고 정말 한국에 잘나왔다”면서 “할아버지들이 이룩해 놓은 덕에 누가 되지 않게 정말 정직하게 사는 것, 이것이 보답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해 11월 연병호 선생의 형인 연병환 선생의 유해가 중국에서 조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또 증평군에서 주최한 학술대회인 ‘증평 출신 곡산 연 씨의 독립운동 조명’에서 연병환·연병호·연미당 선생의 독립 행적이 학계에 자세히 소개됐으며 연병호 선생의 생가 주변에 ‘연병호 항일 역사공원’이 건립돼 선생들의 나라 사랑 정신이 계승될 수 있는 영구적인 기반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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