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정 서비스 산책

(충북뉴스 박현정의 서비스 산책) 필자의 아버지는 청년 시절부터 오랫동안 투병 생활을 해왔다. 그래서인지 기억 속의 아버지는 늘 아프셨고 잦은 입원을 반복하셨다.

그리고 아주 오래전 일이긴 하지만 어머니가 입원실에서 끓인 된장국으로 다섯 식구가 함께 저녁을 먹던 기억도 어렴풋이 난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입원실 취사’라는 걸 했을 시절부터 그렇게 병원은 필자에겐 두 번째 집 같은 곳이다.

그런데 최근 아버지의 건강 악화로 또 한 번 보호자의 신분으로 강제적 입원 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번 입원 생활 동안 인상적이었던 것은 병원 서비스디자인 팀의 노력이 피부로 느껴졌다는 거다.

환자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커튼에 ‘열기 전에 물어봐 주세요’라는 안내 문구, 또는 궁금한 걸 미리 적어놓으면 의료진이 답변해주는 화이트보드까지 ‘고민을 많이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여전히 환자와 늘 함께하는 보호자를 위한 서비스 개선은 부족하다고 느껴졌는데 이것은 비단 필자만의 생각일까?

현재 대한민국의 병원 서비스와 시스템은 세계 최고라고 해고 과언이 아니다. 병원 앱을 통한 예약과 진행 순서 알림, 그리고 앱 결제 등 효율을 극대화해 3~40년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서비스 수준이다.

하지만 딱 하나, 40여 년이 넘도록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환자 보호자를 위한 서비스는 여전히 없다는 것.

언제나 보호자를 기다리는 건 환자 침대 옆 작은 의자 또는 간이침대가 전부다. 이불과 베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그 공간은 보호자들에겐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최악의 공간이다.

환자는 병을 고치러 온 것이지만 보호자는 자신의 생활을 포기한 채 반강제적으로 갇혀 지내야 하기에 없던 폐소공포증까지 생긴다.

유니버셜 디자이너 패트리샤 무어는 노인들을 위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 3년 동안 직접 80대 노인으로 철저하게 분장하여 생활하였다고 한다.

철제 보조기구를 낀 다리와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돋보기안경을 낀 채 3년 동안 철저하게 80대 노인으로 생활하며 느낀 불편함을 디자인으로 옮겼는데 현재까지도 우리가 너무도 잘 사용하는 감자 깎는 칼, 바튀달린 가방(여행 가방), 저상버스 등 수없이 많은 스테디셀러 디자인들을 만들어 노인들의 생활 질을 개선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한 기자는 그녀에게 간단한 고객 설문 조사를 두고 철저하게 노인으로 살아야만 했던 이유에 관해서 묻자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잘못된 디자인이 나올 수 있으므로”라는 답변을 남겼다고 한다.

우리는 과연 고객의 경험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직접 경험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에 대해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환자의 수족이 되어야만 하는 보호자의 경험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입원 환자의 경험도 개선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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