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뉴스 백범준의 해우소) “살았다, 썼다, 사랑했다.”

프랑스 소설의 거장 스탕달의 ‘묘비명’이다. 묘비명은 무덤 주인의 삶의 함축이자 남겨진 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다.

오늘은 필자가 기억하고 있는 유명인들의 묘비명을 소개해본다. 읽고 들었을 뿐 두 눈으로 본 것은 아님을 밝힌다.

소설 노인과 바다로 유명한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일어나지 못해서 미안하오”다. 시인 에밀리 디킨슨 “돌아오라는 부름을 받다”, 로마황제 막시무스는 “누워있어서 미안합니다. 원래는 예의 바른 사람이었습니다”다.

명곡 ‘마이 웨이(my way)’의 가수 프랭크 시나트라의 묘비에는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새겨져 있고 “칼 마르크스의 절반 여기에 잠들다.”는 칼 마르크스의 아내 예니 마르크스의 아내 묘비명이다.

불가(佛家)의 장례의식은 다비식(茶毘式)이다. 시신을 불태우는 화장(火葬) 방식으로 타고남은 유골은 분쇄하여 뿌리고 사리(舍利)만을 수습하기에 별도의 봉분(封墳)이나 묘지가 없다.

그렇기에 매장문화에서의 묘비명과도 같은 것이 불가에서는 열반송(涅槃偈)이다. 임종게(臨終偈)라고 부르는 열반송은 스님들이 입적(入寂)할 때 수행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후인들에게 전하는 함축적 유언이다.

글로 직접 남기거나 상좌들에게 가르침으로 전하는 방식이다. 예전 선사(禪師)들의 열반송은 대개가 한시(漢詩)의 오언절구나 칠언절구 형식을 취했으나 근래의 와서는 자유로운 형태도 많이 보인다.

필자가 존경하는 법정(法頂)스님의 열반송은 “분별하지 말라. 내가 살아온 것이 그것이니라. 간다. 봐라”다.

조계종 종정을 지낸 서암 스님은 “나는 그런 거 없다”고 남기셨다.

불가(佛家)에서의 변소를 처음으로 해우소(解憂所)라고 지으신 경봉스님은 “야반(夜半) 삼경(三更)에 문빗장을 걸어 잠그라”고 하셨다.

전국비구니 회장을 역임하신 우리나라 비구니계의 선구자 태허당 광우 스님은 “떠나는 바람은 집착하지 않는다. 그저 왔다가 갈 뿐이다”라는 말을 남기셨다.

스스로 ‘미치광이 중’, ‘걸레’를 자처한 파격적인 파계승(破戒僧) 중광 스님의 유언은 이렇다. “괜히 왔다 간다”다.

내 죽으면 무덤이 있을 리 만무하겠지만 그래도 어딘가에 라도 몇 글자 남길 곳 허락된다면 이렇게 쓰리라. “울지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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